석가모니께서 계시던 시절에는 오늘날과 같은 절은 없었다. 사문 수행자들은 정해진 곳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법을 널리 펴기 위해, 또 생사로부터 해탈을 성취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철저한 무소유와 유랑의 생활엔 제약이 따랐다. 큰비가 오는 여름이면 이동이 여의치 않아서 어느 한 곳에 머물며 수행하는 안거(安居)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석존께서 가끔 기거했다는 죽림정사(精舍: 깨끗한 집의 의미)나 기원정사를 중심으로 사부대중이 모여들었고 그곳에서 불법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석존께서 입멸하신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석존의 숨결이 살아있는 유적 가운데 룸비니를 비롯한 4 곳을 성지로 꼽아 이곳으로의 순례가 권장되었고, 순례한 자는 커다란 공덕을 쌓는다고 믿게 된 것이다. 석존의 입멸 전후의 사정을 담고 있는 ?대반열반경?에 이미 그러한 사실이 석존 자신의 예언 형태로 묘사되고 있다.
이들 성지에는 일찍부터 돌아가신 부처님에 대한 신앙과 추모의 마음에서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전당(殿堂, 墓, 신성한 무화수, Caitya)’이라고 한 것은 어쩌면 초기에는 무덤 혹은 토분과 같은 것 위에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전당은 거의가 바위를 깊숙이 파고 들어가 원형의 작은 광장을 조성하고 그 가운데에 성스러운 존재를 모시는 석굴 형태이다. 지상에서 하늘을 향해 높이 축조된 탑(st?pa)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탑이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었다면 전당에는 부처님의 정신이며 가르침인 경전 또는 유물을 모셨다고들 한다. 그 시절 제자들은 어디를 돌아보나 이미 사라진 부처님의 모습은 찾을 길 없었고, 어떤 형태로든 부처님의 유물만이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유물을 불신(佛身)을 대신하여 예배 대상으로 삼게 되면서부터 전당과 같은 건축물의 발생을 보게 되었다.
훗날 불상이 생겨나기까지는 전당과 사리탑이 뭇 불자들의 신앙 요구를 풀어 주었다. 이곳에서 신심 깊은 승려와 재가신자가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보건 했던 것이다. 예배뿐만 아니라 부처님 전에 공양도 하고 설법도 행해졌다. 전당은 예배의 장소인 동시에 설법의 장소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절은 불당과 강당을 별개로 가진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지만, 전당의 경우는 불당과 강당을 합친 기능을 다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전당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법당을 생각해 낸 것이다.
법당은 불멸의 생명과 무한한 행복, 영원한 자유와 진리가 충만 되어 있는 법의 집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로 법당에서는 법문을 설하고 각종 법회 의식이 이루어졌으나 차츰 부처님을 모신 금당과 혼돈이 되어 현재는 신앙의 대상을 모신 모든 전각을 총칭하여 법당이라 부르고 있다. 말하자면 법당을 금당?불당과 같은 의미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신앙심에서 나눔의 법칙을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또한 회통불교적인 한국불교의 특색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초기 금당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부처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본존불의 성격에 맞추어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시고 있는 경우에는 대웅전, 아미타불이 본존불일 경우에는 미타전 또는 극락전이라 한다.
이것을 다른 형식으로 분류해 보면, 좁은 의미로는 본전, 조금 넓게는 불전과 보살전을 포함하며, 아주 넓게 볼 때는 모든 전과 각을 포함한다. 부처님을 모신 곳(불전)으로는 적멸보궁, 대웅전, 영산전, 응진전, 대적광전, 극락전, 약사전, 용화전, 천불전이 있으며, 보살을 모신 법당에는 원통전, 명부전, 문수전, 보현전이 있다. 그밖에 대장전, 반야보전, 보사전 등이 있다.
본존을 모신 법당 안으로 들어가 내부 구조를 보자. 법당 내부는 대단히 화려하고 장중하다. 불국정토의 영원하고, 행복하며, 자유롭고, 번뇌가 없는 즉 상?락?아?정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곳이 법당이기 때문이다. 일곱 가지 보물로 꾸며진 나무들, 청정한 물로 가득 채워진 금빛 모래가 깔린 연꽃, 감미로운 바람이 감아 도는 누각 등으로 묘사되는 환희스런 극락세계를 상상하게 해준다.
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중생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여래의 대비심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시도했다. 불교회화, 음악, 조각 등으로 표현하는 연꽃과 같은 불교의 모든 상징적 형상들은 세속에 물든 우리들의 시선을 끌어 모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노심초사하시는 부처님의 자비한 마음의 현현 그 자체이다. 즉 화려한 법당의 모습은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래서 법당은 깨달음의 상징적인 집이다.
좀더 구체적인 구조를 살피면, 법당은 통상 상단 중단 영단의 삼단구조로 되어있다.
상단(上壇)
법당의 어간문에서 바라볼 때 정면에 가장 높은 단상을 설치하고 그 중앙에 부처님상을 모시는데 이 단상을 상단이라 하며, 부처님과 보살상을 모셨기 때문에 불?보살단(佛菩薩壇)이라고도 한다. 혹은 줄여서 불단(佛壇)이라 한다. 이 상단에는 그 절의 주존불 불상과 후불탱화를 모시는 것이 통례이다.
중단(中壇)
호법을 발원한 선신들을 모신 신장단(神將壇)을 중단이라 한다. 여러 신장님들을 모신 단상이기 때문에 신중단(神中壇)이라고도 한다. 제석천이나 사천왕, 대범천 등의 천상 성중과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가루마, 마후라 등 팔부신장 등을 모신 곳이다. 또한 우리의 민속신앙에 의해 칠성과 산신도 모셔져 있기도 하다.
영단(靈壇)
영가(靈駕)의 위패가 모셔진 단상이며, 후불탱화로서 아미타여래래영도와 감로탱화가 통상 모셔져 있으며 이곳을 하단(下壇)이라고도 한다.
상 중 하 3단의 신앙 구조, 즉 가장 외곽을 이루는 하단에서 시작한 신앙이 중단을 거쳐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하단에서 허약한 불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중단에서 보다 나은 수행도를 닦아, 상단에서 궁극적으로 보살행을 열어 성불을 이룰 것을 가르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이것은 밀교의 만다라적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구조로 신앙과 수행의 길을 열어 주고 있는 법당은 영원불멸의 부처님이 법을 설하고 계시는 보금자리이며, 우리들 범부의 불성을 일깨우는 곳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