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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

자공 우주 2007. 6. 22. 08:12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

명예와 재물을 함께 좇으면 비극이 시작된다.


꽃과 과실은 동시에 얻지 못한다

東西古今(동서고금)을 통틀어 「東家食西家宿(동가식서가숙)」만큼 인간 심리의 단면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말도 드물다. 이 속담은 「太平御覽(태평어람)」이란 중국 宋(송)나라 古書(고서)에서 유래한다.
 
 齊(제)나라에 혼기가 찬 아리따운 처녀가 있었는데, 두 집에서 동시에 청혼을 했다. 동쪽 집 총각은 遺産(유산)이 많아 끼니마다 풍족했으나 외모는 볼품없었고, 서쪽 집 총각은 외모는 출중했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하루 세 끼 끼니 걱정이 큰일인 시대였다. 선택이 어렵게 되자 처녀의 부모는 당사자의 결정에 맡기기로 하고 딸에게 물었다.
 
 『네 뜻은 어떠하냐? 말로 하기 힘들면 소매를 걷어 올리거라. 만일 동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오른쪽 소매를 걷어 올리고, 서쪽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면 왼쪽 소매를 걷어 올리거라』
 
 그러자 처녀는 망설임 없이 두 소매를 모두 걷어 올렸다.
 
 『밥은 동쪽 집에서 먹고, 잠은 서쪽 집에서 자고 싶어요』(欲東家食, 西家宿)
 
 동시에 두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자의 속셈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여자의 얄팍한 속셈을 비꼬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여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 지도층에서 자주 목격되어 씁쓸하기만 하다.
 
 각종 비리와 부도덕의 始原(시원)은 두 가지를 동시에 얻으려 하는 寡慾(과욕)이다. 권력자가 財産(재산)을 겸하려 하고, 재력가가 자리와 名譽(명예)를 사려 하고, 高官(고관)이 財物(재물)을 탐내기 시작하면서 悲劇(비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꽃과 과실은 동시에 얻지 못한다. 꽃이 떨어져야 과실이 열린다. 세상은 물과 같다. 배를 띄우는 것도 물이지만 배를 뒤집는 것도 물이다.
 
 조선시대 「大東奇聞(대동기문)」이라는 서적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太祖(태조) 李成桂(이성계)가 개국공신들을 모아 놓고 조선 개국을 축하하는 주연을 베풀고 있었다. 술잔이 오가자 취기가 돈 어떤 늙은 정승이 「雪中梅(설중매)」라는 기생에게 치근댔다.
 
 『너는 東家食西家宿하는 기생이니 오늘 밤 이 몸의 수청을 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설중매가 『東家食西家宿하는 천한 기생이, 어제는 王씨를 모시다가 오늘은 李씨를 모시는 정승 어른을 모신다면 궁합이 잘 맞겠나이다』 라고 받아쳤다.

 中庸의 野合 경계
 
 현대판 「東家食西家宿」이 있다. 野合(야합)에 능한 爲政者(위정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역사의 前轍(전철)이다.
 
 요즘 정치판의 野合은 「中庸(중용)」이란 말로 새 단장한 듯하다. 「包容(포용)의 정치」, 「相生(상생)의 정치」, 「中庸의 정치」라 하여 어중간한 中立(중립)을 선언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짖지 않는 개」는 필요 없다.
 
 인간이 세상에 난 이유는 저마다의 용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늦가을의 마지막 잎사귀가 장렬하게 떨어지지 않으면 나무가 겨울을 나지 못한다. 꽃이 피는 것도 때가 와서 피는 것이고, 꽃이 지는 것도 때가 돼서 지는 것이다.
 
 분명한 자기 목소리로 運命(운명)을 맞이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어중간한 中庸의 野合은 현대판 「東家食西家宿」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