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행 이야기

시비를 떠나라

자공 우주 2007. 6. 22. 10:10
시비를 떠나라

옛날에 나는 도견 스님과 함께 제주도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느 절에 갔더니 보살 두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보살은 억세고 투박해 보였으며 한 보살은 가냘프고 순해 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공양만 하고 곧 떠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두 보살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공양을 하지 않아서 떠날 수도 없고 해서 조심조심 다가가서 들어보니 둘 다 경우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좀 순해 보이는 보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보살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보살님이 잘한 것 같소만, 그 시비하는 자체가 잘못이오. 그러니 보살님께서 먼저 잘못 했다고 말해 보시오.”
“제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스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보살은 이렇게 말한 뒤 상대방 보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만둡시다.”
싸움은 거기서 끝이 났고, 공양을 하는 사이 억센 보살이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성님,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소.”
이래서 두 보살은 화해를 했습니다.


이처럼 ‘내가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그것으로 끝날 일인데 서로 고집을 부리고 아만을 내세우기 때문에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옳다. 그르다 따지는 것. 이 한 생각 이것이 곧 생사(生死)입니다. 끝없는 생사를 불러일으키는 중생심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되면 서로 악담만 오가게 되고 감정은 더욱 상하게 됩니다. 생사가 없는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불자가 옳고 그름을 따지며 생사 속을 해매서야 되겠습니까? 하물며 세상의 모든 명리(名利)를 버리고 출가한 수도승이 시비 속에 휘말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불자는 자비심으로 남의 괴로움을 건져 주어야 하고, 능히 다른이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시비에 부딪치게 되면 먼저 합장하고 “모두가 내 잘못입니다. 성불하십시오.” 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어떠한 시비도 일어날 까닭이 없고 혹 시비가 있다 하더라도 생사가 없는 편안한 경계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세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셋 가운데 둘은 자주 싸웠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스승이 말했습니다.
“음, 네 말이 옳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긴 사람이 사정 이야기를 하자 스승은 역시,
“음, 네 말도 옳구나.” 하였습니다. 옆에 있던 다를 제자가 스승의 태도가 너무도 알쏭달쏭하여 물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이 말도 옳다. 저 말도 옳다고 하시니 누구 말이 진짜 옳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그래, 네 말도 옳다.” 하고는 다른 게송을 읊어 제자들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시시비비를 다 관계할 것 없고
산은 산, 물은 물, 한가로운 데 마음 있네.
극락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은들 무엇하리
흰구름 끊어진 곳에 청산이 나타나는구나.

이는 백 가지 옳고 그른 시비를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시비를 가리는 이 마음은 곧 중생심입니다. 마음 가운데 시비심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옳고 그름을 따지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옳고 그릇됨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자기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나에게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그릇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순간만 잘 넘겨 보십시오. 시비는 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위의 스님처럼 시시비비를 떠나 버린 한가로운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