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행 이야기

부자로 사는 법

자공 우주 2007. 6. 22. 09:39

부자로 사는 법
조선 말엽에 양산 통도사에는 약4백여 명의 스님들이 살았답니다.
그 스님들 가운데 논밭을 소유한 스님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글을 보고 쓸 수 있는 스님은 몇 명 안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님들은 “글이 솥 안에 들어가지 않느니라.”하면서 큰소리를 쳤습니다. 글 많이 알아봐야 배고프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출가하여 부를 이룬 스님들은 오히려 글을 많이 배운 사람을 부려 먹었습니다.
“자네 글씨 꽤나 쓴다면서? 글 좀 아는가?”
“예.”
“그럼, 이 종이를 가지고 가서 책을 한 권 묶어서 오게.”
선비가 종이로 책을 매어 오면, 혹시 종이를 떼어먹지 안았나 싶어 일일이 장 수를 세어본 다음에 일을 시킵니다.
“거기다가 ‘고리실 닷 마지기’라고 적게.”
“예, 적었습니다.”
“배서방한테 쌀 두 섬 입(入)이라고 적게.”
드러누워서도 자기 논이 어디에 있고, 누가 조작 부치고 있으며, 언제 얼마 들어왔고, 아직 얼마 덜 들어왔는지를 환하게 알 수 있도록 기록합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장부정리를 해주면 “욕 봤네.”하면서 품삯으로 쌀 한 되를 내어주곤 했습니다.

♣ 조선시대 후기에 와서는 출가한 스님들의 치부가 공공연히 성행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재산을 모은 승려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왕궁불교라 하여 조정에서 승려를 극진히 대접하고 사찰을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게 꾸미다 보니, 탐욕으로 재산을 모으고 돈놀이를 한 승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정두(正道)에 벗어난 것이라 하여 크게 지탄을 받았습니다. 도닦는 사람이 탐욕심을 내고 재산을 모으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무일물(無一物)이라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왔고 갈때도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여승(女僧)이 되려는 사람들 중에 돈이 좀 있어야 중이 되는 걸로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간혹 있습니다. “맨손으로 가면 스님 시집살이(행자생활)가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는데 돈을 좀 가지고 가야 괄시를 덜 받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물론 세상에 있을 때 돈이 워낙 많았던 사람은 출가하여 그 돈을 절에다 내어 놓고 방하나 따로 달라고 해서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 예금해 놓고 수시로 대중공양도 하고 불사도 하면 나쁜 일은 아닌 것이고, 스스로 편리한 점은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제멋대로 규칙을 어기거나 하는 것은 아예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 절집안의 생활인 것입니다.
또 돈이 있으면 관리하는 데 신경쓰이고 이것저것 일 마음이 가고 하여 번뇌망상과 걱정만 많아지는데 무엇하러 돈을 가지고 출가를 합니까.

해인사 금강굴에 있던 어느 스님은 아들 딸 자란뒤에 출가하여 스님생활을 청정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살던 때의 재산이 워낙 많다 보니까 자식들이 의논해서 금강굴도 지어드리고, 여러 가지 불사도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 빈손으로 출가한 이들 중에서 괜한 자격지심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빈손일수록, 없을수록 도 닦기는 더 좋으며 재물은 있을수록 수도에 방해가 되는 번뇌망상의 주범이 되기 쉬운 것입니다. 사찰은 아무리 잘 꾸며 놓아도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사중(寺中)의 물건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찰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찰에 대한 세금을 물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땅과 집을 가진 사람이 세금을 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승려들은 세금을 물지 않습니다. 바로 내 것 내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세금도 내지 않는 수도승이 축재를 해서 무엇에 쓰겠습니까?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 큰 부자요, 몸에 병이 없으면 제일 큰 복이며 열반이 제일가는 즐거움이요. 마음편한 것이 제일가는 이익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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