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행 이야기

팔만대장경판 조성 권선문

자공 우주 2007. 6. 22. 09:44
팔만대장경판 조성 권선문

고려시대에 있었던 일로서 지금의 합천(陜川)땅에 향리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이거인(李居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가진 재산은 없었지만 항시 없는 사람을 위해 앞장서서 보살펴 주고 권력을 가지고 남을 괴롭히거나 남의것을 탐을 내는 일이 없는 청렴결백하고 정직하며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어느 해 가을에 나라의 조세를 독촉하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돌아 다니다가 밤이 깊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어둠컴컴한 고개마루에서 짐승 한 마리와 마주쳤다.
거인이 놀라서 자세히 살펴보니 몸은 누런 털에 검은 줄이 있는 것이 호랑이와 같은데 귀와 머리 모양은 개와 같았다. 너무 이상한 모양이기도 했지만 더 섬뜻한 것은 파랗게 번쩍이는 눈이 세 개나 되었기 때문에 거인은 등줄기에 땀이주르륵 흘렀다. 호랑이도 늑대도 개도 아닌 것이 공포에 떨며 살금살금 비켜서고 있는 거인을 어슬렁거리며 계속해서 따라왔다. 거인은 겁이나서 목을 움츠러들고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피할 도리도 없고 하여 침착하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짐승도 거인의 집안으로 따라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저런 짐승을 데리고 왔습니까?」거인이 데리고 온 짐승인줄 알고 그 부인이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소」
「모르신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데리고 들어오면서 모른다면 어떻게 된거예요?」
「그게 따라왔지 내가 데리고 온게 아니오」
하며 울상이 되었다. 한참동안 그 짐승을 바라보고 있던 거인은 용기를 내어 몽둥이를 휘저으며 내쫓았으나 그 자리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않고 오히려 개짖는 소리로 짖어 대었다.
「컹 커컹 컹!」
하는 수 없이 이름을 삼목구(三目拘)라 지어 주고 집에서 기르게 되었다.
삼목구는 주인에게 매우 충실했으며 마을의 어떤 개도 가까이 할 수 없을만큼 사납고 용감하였다. 거인이 길을 떠날때면 산너머 마을까지 전송하고 돌아가며 거인이 돌아올 때 쯤이면 아무리 어두운 밤길이라도 돌아올 수 있을만큼 마중을 나와 기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는 병들지도 않았는데 밥도 먹지않고 해 만 바라보다가 며칠만에 죽어버렸다. 거인은 불쌍하게 생각하며 관을 짜서 깨끗하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제문을 지어 슬픔을 달래기도 했다.

그후, 3년이 지난 겨울 어느날 갑자기 거인이 죽고 말았다.
거인이 저승을 갔는데 염라국을 채 못가서 사자가 이끄는대로 어느 지옥나라의 대궐에 끌려 들어갔다. 그 곳 대왕은 머리에 오봉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고 위엄있게 앉아있고 좌우에 소머리에 말 상을 한 사자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거인이 뜰에 무릎끊고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대왕이 아래로 내려와 거인의 손을 잡으며 반가히 말했다. 「주인님, 어찌하여 여기에 오셨습니까? 내가 세상에 귀양갔을 때 3년동안 주인님 집에서 신세를 졌습니다. 귀양살이가 끝나 이렇게 돌아왔지만 주인님의 은혜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는 대왕을 본 거인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눈이 자기가 기르던 삼목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왕은 거인을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 지난 이야기를 하였다. 거인은 너무나 놀랍고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는 대왕께서 귀양살이로 세상에 나오신걸 모르고 보통 개나 짐승으로 대하였사오니 황공한 마음 가눌 길이 없사옵니다.」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대왕은 거인에게 염라대왕앞에 가면 이러한 이야기를 하라고 가르쳐 주고는 사자를 시켜 거인을 전송하게 한 후, 헤어졌다. 드높이 앉아있는 염라대왕앞에 불려나간 거인은 삼목대왕이 일러준대로 말했다.
「소인은 경상도 합천에 사는 이거인이라는 사람입니다. 소인은 향리라는 직책으로 부락일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직무에 바빴고 살기에 바빠서 좋은 일을 한것도 없고 나쁜 죄를 지은 적도 없다고 아뢰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원통한 일은 한 가지 큰 일을 이루지 못하고 온 것이 한이 됩니다. 」 「해보고 싶은 큰 일이란 무엇인고?」
「다름이 아니라 부처님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나무판에 새겨 널리 전하고 포교하면 죄악에서 허덕이는 많은 중생을 건질 수 있을텐데 이를 이루지 못하고 온 것입니다.」거인의 이 말을 들은 염라대왕은 거인에게 다가와 극구 찬양하고 이러한 대 보살을 몰라보고 여기까지 잡아오게 하여 미안한 일이라 하며 곧 판관을 불러 거인 이름을 지우고 빨리 인간으로 호송하여 큰 불사를 이루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거인은 염라대왕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삼목대왕이 있는 곳으로 왔다.
「소인은 대왕께서 시키는대로 하여 이렇게 풀려나오기는 하였읍니다만 거짓말이 되지않게 하여 주소서!」
「주인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집에 돌아가서 좋은 종이 한권을 구하여 책을 만들고 겉표지에 <팔만대장경판 조성 권선문>이라 쓰고 합천 군수에게 말하여 관인을 찍어두고 내가 나갈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곧 내가 인간을 순찰할일이 있을것이오」거인은 삼목대왕과 작별하고 돌아오는 찰나에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났다. 꿈을 꾸다 깬것처럼 저승일이 너무나 생생하여 곧 삼목왕이 시킨 책을 만들고 군수에게 저승 갔던일을 말하고 관인을 찍어다 두었다.
이쯔음에 나라에서는 두 공주가 전혀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 왕의 걱정 근심은 말이 아니었다. 어느날 부왕이 문병을 왔는데 큰 공주가 눈을 감은 채 입만 벌려 말했다.
「대왕이시여, 왕의 두 공주를 낫게 하려거든 급히 팔만대장경 조성을 권선하는 화주를 찾아오도록 하십시요.」놀란 임금은 조서를 내려 이거인이 궁에 도착하게 되었다.이 때 공주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잘 오셨습니다. 처사님이시여, 나는 삼목대왕인데 공주의 몸을 빌려 이 곳에 이르렀읍니다.」한 후, 공주가 다시 부왕을 보고 말했다. 「대왕께선 들으소서, 나는 저승의 삼목귀왕인데 이 화주처사와 저승에서 팔만대장경을 판각하여 모시자고 약속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왕께서 시주 단월이 되어 이 장경불사를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이 두 공주의 병이 나을뿐만 아니라왜적이 쳐들어 오지않고 국가가 태평할 것이오」하고 공주는 다시 쓰러졌다가 긴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나며 왕에게 말했다.
「아바마마, 저승인 명부세계에서도 대장경에 대하여 이렇게 좋은일로 알고 판각을 하려고 하는데 금생에서 이것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아바마마 어서 서둘러 불사를 이루도록 하소서」 하며 두 공주가 건강한 몸으로 일어났다. 왕은 왕실의 금 수만냥을 희사하고 제주도와 거제도의 재목을 운반하여 해인사에 옮기고 사간판(寺刊板)의 장경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완전히 다 되지 못하고 수백권에 이르렀을 뿐이고, 삼목귀왕이 시킨 것이 아니라 삼목귀왕을 염라대왕이 시켜서 장경불사를 이룩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에 전하고 있다.

'수 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혜를 배반한 과보  (0) 2007.06.22
범종불사(梵鐘佛事)의 공덕  (0) 2007.06.22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  (0) 2007.06.22
가장 더럽고 무서운 것  (0) 2007.06.22
부자로 사는 법  (0) 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