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주 명 철
삼계도사 사생자부
맨 앞에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에게 귀명례 한다.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도, 그 밖의 모든 부처들도 상주(常住)하신다는, 언제나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적인 입장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먼저 앞에 나왔다.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분은 불과 80년 동안 세상에 오셨던 분이지만, 이 분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아본사(是我本師)’라고 하고 있다. 우리들의 근본 스승이라는 말이다.
그 앞에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용하는 말로 ‘삼계(三界)의 도사(導師)’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다는 말이 있다. 이 예불문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표현은 경전에 흔히 나오는 것이다. 모든 중생들이 살고 있는 곳을 삼계라고 한다. 또 중생들을 사생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삼계(三界)라고 하는 것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 세계를 말한다. 욕계는 아직 욕심이 남아 있는 세계이다. 색계의 색은 물질이란 말이다. 욕심은 없어졌지만, 물질, 형태 이런 것들이 아직은 남아 있는 세계이다. 무색계는 색도 없단 말이다. 의식(意識)만이 남아 있다. 참선하는 사람들이 수행을 하다 보면, 욕심은 다 없어졌다는 단계에 올라가게 된다. 아직 육신은 있고, 육신의 쾌감 같은 것도 남아 있다. 정신적인 쾌감, 아주 기분이 좋다든지. 그러한 의식의 쾌감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도 아직 틀렸다. 그것마저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세 단계를 이야기한 것이다.
중생들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마음가짐에 탐·진 ·치라는 더러움이 있기 때문에 잘못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세 가지 독소가 중생들의 마음을 더럽히고 있기 때문에, 더러워진 중생들의 세계를 삼계라고 한다. 참선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도 여전히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삼계에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삼계의 도사(導師), 삼계에 허덕이며 살고 있는 중생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시다. 사생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것들을 네 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이야기와 비슷한데,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구분한다면, 우선 습한 곳에서 나는 습생(濕生)이 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할 때에는, 시퍼런 이끼도 끼고 거기에서 벌레 같은 것도 많이 생긴다. 그 중에는 아메바 같은 것도 있고, 박테리아 같은 것도 있다. 그런 것들을 습생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알에서 태어난 것이 난생(卵生)이고,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을 태생(胎生)이라고 한다. 포유동물인 인간도 그렇고, 개나 소도 그렇고, 모두 다 어머니 태속에서 나오는데, 이것을 모태에서 태어난다고 해서 태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생(化生)이 있는데, ‘화(化)’는 변화한다는 ‘화’자이다. 습기나, 알이나, 태를 거치지 않고 나는 것을 화생이라고 한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가운데,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화생이라고 하다. 이것을 다시 의생(意生)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네 가지를 합해서 습?난?태? 화(濕卵胎化)라고 하는 것이다. 사생의 자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어진 아버지를 뜻한다.
아버지라는 것이 무엇이냐? 그것 없이는 나오지 못하는 그것이 아버지이다. 근원이라는 말이다. 그 생명의 근원이 사람으로 바뀌었을 때 석가족(釋迦族)에서 태어난 성인(聖人)이라고 해서 석가모니불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능력을 다 바쳐서 우리들의 스승이자 어진 아버지이신 석가모니불에게로 돌아가는 생활을 살겠다는 말이다. 정말 당신과 같이 되는 그런 생활을 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방삼세 상주일체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시방(十方)은 공간이고, 삼세(三世)는 시간을 의미한다. 시방이라는 것은, 동?서?남?북 사방에 그 중간까지 더하면 팔방(八方)이다. 아직 납작하다. 거기에 상?하까지 생각해 보면 입체가 된다. 그래서 시방이 되는 것이다. 삼세는 과거?현재?미래를 말한다. 그러니까 ‘시방삼세 …… 상주일체’는 언제 어디에나 계신다는 말이 된다.
부처님은 시방에, 동시에, 어디에든지 계신다. 무량수경과 같이 부처님은 서쪽에만 계신다고 이야기하는 경전도 있다. 또 옛날 불교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도에 오셨다가 가셨다고 한다. 80년 동안 사시다가 가셨다고 한다. 지금은 안 계신 것으로 되어 있다. 무슨 소리냐 하면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은 인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서쪽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동쪽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동·서·남 ·북·상·하 그 어디에나, 과거?현재?미래에 동시에 계신다고 한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과거 사람이 아니다. 현재 사람이기도 하고, 미래 사람이기도 하고, 시간을 초월해서 계신다고 할 수 있다.
제망찰해
‘시방삼세’와 ‘상주일체’ 사이에 ‘제망찰해(帝網刹海)’라는 말이 나온다. ‘제망찰해’의 ‘제(帝)’는 제석천(帝釋天)이라는 신을 말한다. ‘제망’은 제석천의 망(綱)이라는 뜻이다. 제석천은 경전에서는 ‘석제환인(釋帝桓因)’이라고 많이 불리어진 신이다. 글자 순서가 달라졌지만, 석제환인과 제석천은 같은 신을 말한다.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드라(Indra)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드라는 천둥과 번개를 쳐 악마를 물리치는 신이다. 앞에서 금강(바즈라, vajra)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금강이라는 쇠스랑 같이 생긴 무기(cakra)를 가지고 다니는 신인데, 인도말로는 샤크라(?akra)라고도 한다. 원래는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akra dev'n' indra)’라고 한다. 그것을 한문으로 ‘석제환인’이라고 옮긴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제석천이 된 것이다.
제석천은 쇠스랑 같은 금강을 가지고 다니면서 독룡과 싸움을 한다. 용은 몸에 열이 많고 뜨거워서 몸 속에 물을 간직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고 한다. 그래서 용은 언제든지 하늘에서 물을 전부 다 빨아들여서, 자기 뱃속에 채워 가지고 있다. 용이 그렇게 물을 전부 다 뱃속에 넣고 있으면, 지상에서는 농사가 안 된다. 그래서 지상에서는 비가 오도록 기도를 한다. 그러면 제석천이 바즈라를 용의 머리로 향해서 던져, 그 때 용의 배가 쫙 갈라지면서 비가 쏟아져 내리게 된다.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고, 농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 농사가 풍년드는 데에도 효험을 주는 신이고, 전쟁에도 이기게 해 주는 신이다. 제석천은 늘 바즈라를 들고 다닌다고 했는데, 그것이 천둥, 벼락, 번개의 표시이다. 고대 인도의 베다(Veda)시대에는 인드라가 가장 강력한 신이었다.
인드라신은 우리 단군신화와도 관계가 있다. 단군신화를 보면, 천상의 신인 석제환인이, 그러니까 인드라가 그 서자 환웅(桓雄)을 우리나라에 보냈는데, 환웅이 우리나라에 와서 웅녀(熊女)와 혼인을 했다고 한다. 웅녀는 곰이다. 곰을 자기네 조상이라고 숭배하는 토착민족이 있었단 말이다. 곰 토템이라고 할 수 있다. 곰 토템을 가진 우리 조상의 여인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을 한자로 환검(桓儉)이라고 했다. 이 환검이 바로 단군 왕검이다.
누가 이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느냐 하면,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지은 일연(一然)스님이다. 그 전부터 있었다고 하지만 확실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어쩌면, 암만해도 일연스님이 적당히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여기에는 불교 냄새가 많이 들어가 있다. 석제환인, 인드라의 서자 환웅이 와서 환검을 낳았다. 그리고 이 환검은 우리나라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 하겠다고 건국이념을 내세웠다. ‘홍익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일연스님이 만든 것 같다. ‘홍익인간’이라는 것은 바로 불교에서 ‘요익중생(饒益衆生)’, 혹은 ‘이익중생(利益衆生)’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요익중생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겠다고 하는 이상이다. ‘중생’이라는 말을 ‘인간’이라는 쉬운 말로 고치고, ‘이익’을 ‘홍익’이라고 고쳐서, ‘홍익인간’하겠다는 건국이념을 내세웠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자기의 호를 단군(檀君)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단(檀)’은 불교를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보시(布施)’라는 의미를 가진 산스크리트어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다나(d?na), 그것을 한자로 ‘단(檀)’이라고 쓴다.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 같다. ‘단’, ‘널리 베풀어준다.’ 육바라밀다의 첫 번째 보시바라밀다이다. 베풀어 주는 것이 그 정치의 목적이었다. 그것을 자기의 이름으로 가진 것이다. 단군(檀君), 단군왕검 혹은 환검,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드라신은 우리나라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력을 가지고 있는 제석천은 아직도 욕계에 있다. 제석천은 욕계의 다섯 번째 하늘나라인 도리천(?利天)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도리천에 있는 제석천의 궁전에는 아주 아름다운 색깔의 구슬들이 수없이 매달려서, 서로서로 마치 그물과 같이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 빛깔도 다양하다. 햇빛을 받으면 서로 다른 구슬에게 빛을 주기 때문에, 빛과 빛이 한데 어울려서 아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이러한 갖가지 빛깔의 구슬들의 그물을 제석천 궁전의 망(網)이라는 뜻으로 ‘제망(帝網)’이라고 했다. 보배로운 망이라는 뜻에서 ‘보망(寶網)’이라고도 한다.
‘제망찰해(帝網刹海)’라고 하는 것은 제석천의 궁전에 있는 보석구슬의 그물처럼 한 찰라 한 찰라, 하나의 아주 짧은 시간, 혹은 하나의 티끌 같이 아주 조그만 공간에 조그마한 아톰(atom)들이 서로 빛을 주고받으면서 어우러져 있는 광경을 말한다. 그런 것이 제망찰해, 바다와 같이 넓게 깔려 있다는 말이다. 우주자연이 제망찰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는 과거라는 구슬, 현재라는 구슬, 미래라는 구슬, 수많은 구슬들이 서로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동쪽의 구슬, 서쪽의 구슬, 남쪽의 구슬, 북쪽의 구슬이 위, 아래의 구슬들과 전부 다 얽혀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좋고, 어느 하나는 나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가 다 자기의 아름다운 빛깔을 내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시간과 공간에, 언제나 어디에나 계시는 부처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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