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천손 천민의 배달겨레는 개천 이래로 위대하고 거룩한 3대 경전으로 조화경인《천부경》과 교화경인《삼일신고》와 치화경인《참전계경》이 있다. 81자로 구성된《천부경》은 한배검께서 천부삼인을 가지시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셔서 신시를 열어 인간을 넓고 크고 유익케 하기 위하여 만백성을 가르치실 적에 조화의 원리 곧 우주창조의 이치를 81자로 풀이한 참 경전이다.
무릇 하늘엔 운수(運數)가 있고 땅에는 이치(理致)가 있으며, 인사(人事)엔 법도(法度)가 있다. 큰 고이[德]로 만들고 큰 슬기로 가르치며 큰 힘으로 다스림이 하늘의 권능(權能)이요, 곧게 낳고 곧게 되며 곧게 이룸이 땅의 효능(效能)이며, 바로 느끼고 바로 숨쉬고 바로 부딪침이 인간(人間)의 지능(知能)이니, 만물(萬物)의 시작과 끝·모이고 흩어짐·만나고 헤어짐·조이고 풀림·흐르고 멈춤·가고 오는 모든 현상(現象)이 이 운도(運度) 속에 존재한다. 천부경(天符經)은 이러한 원리(原理)를 징험(徵驗)한 하늘의 예언서(豫言書)로, 물리(物理)에 있어서는 구심(求心) 즉(卽) 원심(遠心)임을 일깨우는 변화무쌍(變化無雙)의 과학(科學)이요, 수행(修行)에 있어서는 외허(外虛)인 듯 내공(內空)의 성력(聖力)을 북돋는 현묘운기(玄妙運氣)의 비방(秘方)이며, 철학(哲學)에 있어서는 신리(A理)로써 인생(人生)을 꿰뚫는 천인관통(天人貫通)의 고전(古典)이요, 경전(經典)에 있어서는 천경(天經)으로서 속경(俗經)의 질서(秩序)를 바로 세우는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진경(眞經)이다. 그러므로 천수(天數)·지리(地理)·인사(人事)의 기본이 되는 만듬의 섭리(攝理)가 이 틀에 있고 가르침의 묘리(妙理)가 이 속에 숨쉬며 다스림의 순리(順理) 또한 이 안에서 작용하니, 인간(人間)의 사상(事象)이 아무리 넓고 크다한들 천부(天符)의 추천(鞦韆)에 불안좌정(不安坐定)한 어린아이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천부경(天符經)이야말로 이와 같은 불안(不安)과 무질서(無秩序)의 세상(世上)을 안정(安定)과 질서(秩序)의 세계(世界)로 정치(正置)시키는 대종교(大倧敎)의 고래(古來) 경전(經典)이요 민족(民族)과 인류(人類)의 옥경보전(玉經寶典)으로,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시종(始終)과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철리(哲理)를 담은, 시공(時空)을 초월(超越)한 불멸(不滅)의 진리태(眞理態)다. 까닭에 선(善)한 마음으로 접하면 천심(天心)이 열리고 악(惡)한 마음으로 접하면 인심(人心)이 망가지며, 맑은 기운(氣運)으로 대하면 천경(天鏡)이 비추고 흐린 기운(氣運)으로 대하면 홍진(紅塵)이 뒤덮으며, 두터운 뜻으로 받들면 천기(天氣)가 감응(感應)하고 엷은 뜻으로 받들면 속기(俗氣)가 몸을 덮나니, 천부경(天符經)은 실로 견성(見性)과 연성(煉性) 그리고 솔성(率性)의 삼합(三合)을 통한 성통공완(性通功完)의 귀감(龜鑑)이요 자비(慈悲)와 천도(天道) 그리고 인의(仁義)의 삼화(三和)를 통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나침반(羅針盤)으로, 우리 종문(倧門)《삼일신고(三一
천부경은 글자의 뜻 그대로 「한울 보람[天符]」 곧 한울의 신비를 암시한 글인데 하나로부터 열까지의 수리(數理)에 의하여 천지창조(天地創造)와 그 운행의 법칙, 또는 만물의 생장성쇠(生長盛衰)하는 원리를 여든 한자의 짧은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우주와 인생이 한얼님의 조화신공(造化 그리고 천체(天體)의 무형(無形)함이 원적(圓的)으로 되어 있고, 그 운동의 궤도(軌道)도 원형(圓形)으로 운행함과 같이 사람의 참 성품[眞性]도 이 원형을 본떠 작용한다는 것이다. 우주의 만유(萬有)는 하나마저 없는 데서 이치[理]를 일으켜 다시 기운[氣]을 타고[稟] 바탕[質]을 갖추고 모습[形]을 갖게 된다. 이 점은 한울이나 땅이나 사람이 창조된 순서는 다르다 할지라도 그 다함 없는 본체(本體)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쓰임[用]의 변화는 있을망정 근본(本)의 움직임은 없는 것이다. 이 움직임이 없는 근본을 주체[體]로 삼고 나고[生], 되고[化], 이루는[成], 변화를 쓰임[用]으로 삼아 한울과 땅과 사람과 물건의 모든 원리를 밝힌 것이 곧 「천부경(天符經)」에 나타나 있는 하나[一]로부터 아홉[九]까지의 수를 풀어 나가면 열[十]은 완성된 마감 종수(終數)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면, 하나{一]는 수의 시작이고 원(圓)의 약수(約數, 率)이며 우주의 본체수(本體數)를 뜻한다. 곧 상대가 없는 절대수(絶對數)이기 때문에 하늘을 가리키므로 계수(計數)보다 의미로 보는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공자는 나의 도는 하나로써 꿰뚫는다[吾道日以貫之]고 했고, 석가는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萬法歸一]했으며, 노자는 하나는 둘을 낳는다[一生二]했고, 대종교(大倧敎)에서는 세 참함이 하나로 돌아간다[三眞歸一]라고 한 것이다. 둘[二]은 방(方)의 약수(約數)로서 하나가 낳는[生] 수라면 둘은 자라서[長] 변화하는 화수(化數)이다. 그러므로 하나가 하늘을 뜻하면 둘은 땅을 의미한다. 하나가 둥근 수라면 둘은 네모진 수요, 하나가 양(陽)이라면 둘은 음수(陰數)이다. 셋[三]은 각(角)의 약수(約數)로서 이루어지는 성수(成數)이다. 둘이 땅을 뜻한다면 셋은 사람을 의미한다. 또한 셋은 돌고 돌아 다함이 없는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이치는 하나로써 떳떳함을 삼고 셋으로 변함을 삼는다[天地之理以一爲尙, 而以三爲變]이라 하였다. 이 셋이 아니면 하느님의 신공(神功)이 이루어질 수 없어 만물이 완전하지 못하고 삼일(三一)의 진리도 성립되지 못한다. 넷[四]은 방(方)의 주체되는 체수(體數)요, 만물이 이루어진 작용을 외형적으로 나타내는 수이다. 그러므로 방위에는 동서남북의 사방이 있고, 계절에는 춘하추동의 사시(四時)가 있고, 사람의 몸에는 팔, 다리 사지(四肢)가 있다. 다섯[五]은 선천(先天)의 중궁(中宮)을 차지한 수로써 넷이 만유가 이루어진 작용을 나타내는 수라면 다섯은 생성(生成)의 형태를 차지한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는 물[水]·불[火]·나무[木]·쇠[金]·흙[土]으로 오행(五行)의 기운이 있고, 도(道)에는 어짊[仁]과 옳음[義]과 예(禮)와 지혜[智]와 믿음[信]의 오상(五常)이 있으며, 빛[色]에는 푸른 것[靑]과 누른 것[黃]과 붉은 것[赤]과 흰 것[白]과 검은 것[黑]의 오색(五色)이 있고, 맛[味]에는 신 것[酸]과 짠 것[鹹]과 매운 것[辛]과 단 것[甘]과 쓴 것[苦]의 오미(五味)가 있고, 내장(內臟)에는 염통[心臟]·간장(肝臟)·지라[脾臟]·허파[肺]·콩팥[腎臟]의 오장(五臟)이 있으며, 사람 몸의 손과 발가락도 오지(五指)로 되어 있다. 여섯[六]은 원(圓)의 주체와 쓰임[體用]을 겸한 수로써 우주의 원소(原素)인 하늘[天]·불[火]·전기(電氣)·물[水]·바람[風]·땅[地]의 육대(六大)를 대표한 수이다. 그러므로 만유의 어미[母]인 노음수(老陰數)에 해당되며 성수(成數)인 셋의 배수(倍數)이기도 하다. 일곱[七]은 만유의 생성된 부문을 상징하여 나타내는 수이다. 그러므로 하늘에는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의 일곱 성계(星界, 七曜)가 있고, 무지개[虹]에는 일곱 빛[七色]이 있으며, 사람 머리에는 귀[耳]·눈[目]·입[口]·코[鼻]의 일곱 구멍[七竅]이 있다. 여덟[八]은 방(方)의 쓰임 수[用數]로 그 체수(體數)인 넷의 배수(倍數)이며 역(易)에서 말하는 태음(太陰)·태양(太陽)과 소음(少陰)·소양(少陽)이 변성(變成)한 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괘(卦)는 여덟으로 이루어진다. 아홉[九]은 각(角)의 쓰임 수[用數]로서 셋의 초승수(初乘數)요, 여덟이 입체적(立體的) 수라면 아홉은 각추적(角錐的)인 역할을 하는 수이다. 넷과 짝하여 노양(老陽) 수를 이루며 그리고 수의 가치로 제일 윗자리가 되고 성수(成數)의 가장 높은 수이다. 그러므로 음양학(陰陽學)에는 구궁(九宮)의 법칙이 있고, 사람 몸의 위아래에는 아홉 구멍[九竅]이 있는 것이다. 대체 이 수에 있어서 하나[一]와 다섯[五]과 일곱[七]은 형상으론 원(圓)이 되고 그 쓰임에는 고르게 변화함을 나타내고 뜻으로는 중심이 되며, 셋[三]과 여섯[六]과 아홉[九]은 운동과 성립을 뜻하고, 둘[二]과 넷[四]과 여덟[八]은 나눔과 형상을 나타내는 수이니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의 양수(陽數)는 시간적인 것을 의미하여 움직임을 상징하고, 이사륙팔십(二四六八十)의 음수(陰數)는 공간적인 것을 뜻하여 고요함을 표상(表象)하는 수이다.
하나이란 우주의 근본이요, 만유의 비롯되는 수이니 이 하나보다 먼저 비롯됨은 없느니라. 이를 분석하면 한울과 땅과 사람의 삼극(三極)이 되지만 그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 이 한울의 근본인 하나는 창조과정에서 있어서 첫째 번이 되고, 땅의 근본인 하나는 그 둘째 번이고, 사람의 근본인 하나는 그 셋째 번에 되었느니라. 이 만유의 비롯인 하나를 쌓아 나가면 열까지의 끝수에 이르도록 커지되, 아무 부족함이 없이 성수(成數)인 셋으로 화하나니 한울의 음(陰)과 양(陽)인 두 가지는 셋이란 성수의 자리에서 되었고, 땅의 음·양 두 원소(元素)도 셋의 자리에서 되었으며, 사람의 음·양 둘도 이 셋이란 자리에서 이루어졌나니 이 삼극(三極)의 큰 셋을 합하면 육대(六大)의 여섯이 되나니 이 여섯에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낳아지느라. 셋과 넷으로써 한울과 땅이 운행(運行)을 하며, 여섯을 중심으로 그 앞뒤에 있는 다섯과 일곱으로 서로 가락지와 같은 원형(圓形)을 이루는지라 이 근본과 비롯이 되는 하나는 오묘하게 불어서 우주 사이에 만 번 가고 오되, 그 쓰임은 변하지만 근본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이 근본이라 곧 마음이니 이는 태양에 근본하여 사람의 중심에 밝게 비치니 사람의 근본은 한울과 땅과 같으니라. 하나란 근본으로 돌아가면 마침이 되나니 하나에서 더 마칠 수는 없느니라. 天符經 一始 일시(一始)의 일은 이치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본이요, 수의 비롯이 되는 까닭에 이 일(一)보다 먼저 비롯될 수는 없다. 또 이 일의 비롯을 무( 비유하면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胎兒)는 이름도 없고 성적 구별도 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번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 세상에 나오면 이름도 지어지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갈라진다. 이 아이는 다른 아이가 아니오. 그 태반에 있던 아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울과 땅과 사람은 그 이름과 작용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이치와 근본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다. 한울의 도[天道]는 창조함을 주장하고, 땅의 도[地道]는 변화시켜 기르는[化育] 것을 주장하고 사람의 도[人道]는 이를 본받아 행함[效行]을 주장한다. 이 창조와 화육과 효행의 작용은 다르지만 그 삼극의 근본됨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근본은 시간적으로 무진( 한울에도 음·양이 있고 땅에도 음·양이 있고, 사람에게도 또한 음·양이 있다. 한울에는 몸이 텅 빈 체허천(體虛天)과 이치가 보이지 않는 이공천(理空天)의 두 갈래가 있고, 땅에는 물·불[水火]의 두 상극(相剋)이 있고, 사람에게는 남·녀의 두 상대가 있는 것이다. 이 한울의 이치와 몸체는 둘이 서로 어울리어 천도(天道)를 이루었고, 땅의 물과 불은 서로 부딪쳐 육지와 바다를 이루어 지도(地道)를 다하였고, 사람은 남녀가 서로 만나 인륜을 지켜 인도(人道)를 빛내었으니 삼극에 있어서 상대성(相對性)의 원리가 아니면 그 도가 쉴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서 한울과 땅이 자리를 정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고, 물과 불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天地定位, 雷風相搏 山澤通氣 水火不相射]다 함은 이 상대의 순리 작용을 말함이다. 그러나 삼극이 음·양 배합으로 이루어짐은 결국 삼차(三次)의 과정인 생(生)·화(化)를 거쳐 성(成)의 단계에서 완성되므로 이를 수로 표현하여 한울과 땅과 사람의 두 상대가 다 셋에서 이루어졌음을 천이삼(天二三)·지이삼(地二三)·인이삼(人二三)이라 한 것이다. 큰 셋이 합하여 여섯이 된다함은 우주의 만유는 한얼님의 신공인 대덕(大德)과 대혜(大慧)와 대력(大力)의 삼대(三大)로서 성·명·정(性命精)의 삼진(三眞)을 받지만 이것만으로서는 형체를 갖추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심·기·신(心氣身)의 삼망(三妄)이 뿌리 박혀서 비로소 육체를 완성하게 된다. 이 삼진과 삼망은 우주의 구성원소인 천·화·전·수·풍·지(天火電水風地)를 상징한 것으로 성품은 한울을 상징하고, 목숨은 불을, 정기는 전기를, 마음은 물을, 기운은 바람을, 몸은 땅을 제가끔 상징한 것이다. 이 육대원소에서 만유가 이루어짐은 천·화·전의 삼양(三陽)과 수·풍·지의 삼음(三陰)이 서로 합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천대(天大)·지대(地大)·인대(人大)의 세 음양이 합쳐서 여섯이 되고, 이 여섯인 모체(母體)에서 일곱과 여덟과 아홉을 낳게 된다. 역(易)에서도 세 번 변하여[三變] 소성괘(小成卦)를 이루고 여섯 번 변하여 대성괘(大成卦)를 이루며, 이 음양배합인 여섯에서 나온 일곱은 소양(小陽) 여덟은 소음(小陰) 아홉은 태양(太陽)이라 하며 여섯은 태음(太陰) 곧 어미와 같은 것이다. 셋과 넷으로 운행한다 함은 한울에서 있어서는 천체(天體)의 운행을 말함이요, 사람에 있어서는 사지(四肢)의 운동을 말함이다. 한 계절(季節)은 석 달이요, 한 해는 네 철[四時]이며 팔다리는 모두 넷이요, 한 지체(肢體)의 마디는 셋으로 되어 있음은 삼변사분(三變四分)의 원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울의 운행과 사람의 운동이나 그 운명(運命) · 운수(運數)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다를 바 있으랴! 다섯과 일곱으로 가락지 같은 원(圓)을 이룬다 함은 다석은 중궁수(中宮數)로 복판을 차지한 변화의 수[化數]이니 육칠팔구(六七八九)는 이 화수인 다섯에 일이삼사(一二三四)를 더한 것이다. 중궁이란 복판을 말함이요, 또 복판이란 원(圓)의 중심을 뜻한다. 일곱은 독양수(獨陽數)라 하는 바 육칠팔구(六七八九)의 수 중에서 여섯과 여덟은 음수요, 아홉은 셋과 셋을 곱한 양수이지만 일곱은 양수와 양수를 곱하여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곱은 양중(陽中)의 양수라 하며 이 수는 한울에서는 태양을 상징하고 땅에서는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를 상징한다. 이 불은 양중의 양물(陽物)로서 그 형상은 원(圓)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다섯과 일곱은 여섯의ㅏ 앞뒤에 자리하여 항상 천운(天運)의 순환(循環)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라고 하는 이 근본수는 주체에 있어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마는 작용에 잇어서는 천만 가지의 상태로 오묘하게 불어 나간다. 그러므로 인류가 수없이 늘어나고 만물이 한없이 번식함은 다 이 하나의 작용이 있음으로서이다. 그러나 천지의 운행이 몇 억만 년을 지나도 사시(四時)의 차서(次序)는 변함이 없고, 만물의 생성변화(生成變化)가 이 땅 위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일어나건만 그 근본원리에는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가 묘하게 불어 만 번 오가더라도 작용은 변하고 그 근본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근본은 곧 마음의 근본이요, 마음의 근본은 참 성품[眞性]이다. 이 성품이 태양과 같이 밝게 사람의 속마음에 비치면 마치 한울 복판에 태양과 같이 높이 솟아 우주를 환하게 비쳐줌과 같이 성품에 의지한 마음이 가달길을 돌이켜 참에로 돌아오나니 이같이 하면 사람은 천지으 ㅣ중간에서 그 근본과 도를 천지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은 만물 중에서 영특하게 빼내어 위로 한얼에 합하고 아래로 뭇별에 응하는지라, 그 도는 천지와 같이 한다[惟人 하나에서 마친다 함은 천운의 순환이 일 년 중에서 동지로부터 일양(一陽)이 시작하여 다시 제자리로 환원(環元)함은 그 해의 돌아감을 마쳤다 함이요,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타고난 근본 자리로 돌아감은 인생살이를 마쳤다 함이요, 물이 근원에서 흐르기 시작하여 바다로 들어가 태양의 열을 받고 수증기로 떠올라 비가 되어 다시 근원으로 돌아오는 것도 또한 흐름을 마쳤다 함이다. 이와 같이 만 가지 이치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면 마침이니 이 근본인 하나에서 비롯하고 하나에서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마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영원히 계속되어 사실상 그 마침이 없으며, 또한 하나인 자리에서 더 나갈 수도 없고 이밖에 더 마칠 수도 없는 것이다.
단군 천부경(檀君 天符經)은 신지(神誌)가 전자(篆字)로 옛 비석에 쓰고, 최문창후 고운(崔文昌候孤雲)이 그 글자를 풀어 태백산(太白山: 현 묘향산)에 새겼으니 이제 그 글을 상고하면 그 글이 간략하고 깊으며, 중요하고 바로 되어 복희(伏羲) 대역(大易)의 이치와 더불어 부합되지 않음이 없으되 어두움에 빠져 깊이 강개(慷慨)함을 느끼고 이에 자세히 주해를 더하여 그 뜻을 펴노라. 단군천부경(檀君天符經)은 신지전견어고비문(神誌篆 見於古碑文)하고 최문창후고운해기자(崔文昌候孤雲 解其字)하여 각우태백산(刻于太白山)하니 금안기문(今按其文)하면 간이오(簡而奧)하며 요이정(要而正)하여 여복희대역지리(與伏羲大易之理)에 막불문합이인회(莫不脗合而湮晦)하되 심용개연(深用慨然)하고 상가주해(詳加註解)하여 이발기의(以發其意)하노라. * 일시무시일(一始 도(道)란 하나일 따름이라 그러므로 하나로 비롯하되 하나에서 비롯됨이 없느니라. 도라고 이름하는 그 주체는 하나만 같음이 없고, 도에사무치는 그 묘함도 하나만 같음이 없고, 도에 사무치는 그 묘함도 하나만 같음이 없은 하나의 뜻이 크도다. * 일시무시일(一始 도자일이이의(道者 一而已矣)라 고일위시이무시어일자야(故一爲始而 * 석삼극(析三極) 쪼갠다 함은 나눔이요, 한 끝이란 한울과 땅과 사람의 지극한 이치라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삼극(三極)의 도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아 셋에 이르러 그 변화가 다함이 없으므로 셋이 만물을 낳는다" 하였느니라. *석삼극(析三極) 석분야(析 分也)오 극자(極者)는 천지인지지리야(天地人之至理也)라 계사왈(繫辭曰)에 육효지동(六爻之動)은 삼극지도야(三極之道也)라 도생일(道生一)하고 일생이(一生二)하며 이생삼(二生三)하여 지우삼이변화불궁(至于三而變化不窮)하므로 고왈삼생만물(故曰三生萬物)이니라. * 무진본( 하나란 천하의 큰 근본이며, 이것이 나뉘어 삼극이 되고, 또 삼극이 이미 서 있음에 만 가지 이치가 다 이로 말미암아 나나니 큰 근본은 다함이 없느니라. *무진본( 일위천하지대본(一爲天下之大本)이며 이분지위삼극(而分之爲三極)하고 삼극기립(三極旣立)이니 만물함유차출(萬理咸由此出)하나니 이대본무유궁진야(而大本 * 천일일지일이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이것이 곧 삼극이라 한울은 하나를 얻어 하나가 되고 땅은 하나를 얻어 둘이 되고, 사람은 하나를 얻어 셋이 되니 하나를 한 번 함의 나뉨이라. 그러므로 도는 하나이되 한울에 있으면 천도(天道)도 되고, 땅에 있으면 지도(地道)가 되고, 사람에게 있으면 인도(人道)가 되나니 나누면 삼극이 되고 합치면 한 근본이 되느니라. * 천일일지일이인일삼(天一一地一二人一三) 시즉삼극야(是卽三極也)이라 천득일이위일(天得一而爲一)하고 지득일이위이(地得一而爲二)하며 인득일이위삼(人得一而爲三)이니 내일일지분야(乃一一之分也)라 고도일이재천위천도(故道一而在天爲天道)하고 재지위지도(在地爲地道)하며 재인위인도(在人爲人道)하나니 분지위삼극(分之爲三極)하고 합지위일본야(合之爲一本也)니라. * 일적십거(一積十鉅) 하나이란 수(數)의 비롯이요,열은 수의 마침[終]이라. 하나로부터 비롯하여 쌓아 열이 되면 크니라. 하도(河圖)의 열 수는 천지조화의 근본이니 그 이치 또한 깊이 합하니라. * 일적십거(一積十鉅) 일수지시야(一 數之始也)오 십수종야(十 數之終也)라 자일이시(自一而始)하여 적지위십칙거의(積之爲十則鉅矣)니라 하도지십수(河圖之十數)는 위천지조하지본야(爲天地造化之本也)이니 기리역위암합(其理亦爲暗合)이니라. * 무궤화삼( 하나에서 열까지 쌓아 이로부터 나아감은 천만 가지의 변화가 그 다함이 없으되 이는 다 삼극의 변화에 말미암음이니라. * 무궤화삼( 일이적십(一而積十)하여 자차이진(自此而進)하면 천변만화(千變萬化)가 무유갈( * 천이삼지이삼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하나를 나누면 둘이 됨은 자연의 이치라 계사(繫辭)에 이르기를 "한울을 세움의 도는 음(陰)과 양(陽)이요, 땅을 세움의 도는 부드러움[柔]과 억셈[剛]이요, 사람을 세움의 도는 어짐[仁]과 옳음[義]이라 삼재(三才=三極)를 겸하여 두 번 하나니 그러므로 역(易)은 여섯 그음[六劃]으로 그 괘(卦)를 이루느니라." * 천이삼지이삼인이삼(天二三地二三人二三) 일분위이(一分爲二)는 자연지리야(自然之理也)라 계사왈입천지도(繫辭曰立天之道)는 왈음여양(曰陰與陽)요 입지지도(立地之道)는 왈유여강(曰柔與剛)요 입인지도(立人之道)는 왈인여의(曰仁與義)이니 겸삼재이량지(兼三才而兩之)므로 고역대육획이성괘(故易六劃而成卦)니라. * 대삼합륙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 하나를 나누어 둘로 만들고 하나에 두 갑절씩 곱하므로 여섯이 되나니 한울과 땅과 사람이 제가끔 그 둘씩 얻어 합치면 여섯이 되고, 이 여섯에 하나와 둘과 셋을 더하면 일곱과 여덟과 아홉이 되는지라 대개 수는 아홉에 이르면 돌고 돌아 다시 나서 그 쓰임이 다함이 없나니 낙서(洛書)의 아홉수는 천지조화의 작용이라 그 또한 이와 더불어 깊이 합하니라. * 대삼합륙생칠팔구(大三合六生七八九) 일분위이(一分爲二)하고 이이배가어일(而二倍於一)하면 고왈륙(故曰六)이니 천지인각득기이(天地人各得其二)하면 이합지위륙(而合之爲六)하고 자륙이가일이삼(自六而加一二三)하면 칙생칠팔구의(則生七八九矣)라 개수지어구(盖數至於九)하면 이순환생(而循環生)하고 기용불궁언(其用不窮焉)하나니 낙서지구수(洛書之九數)는 위천지조화용야(爲天地造化用也)이라 기역여차암합(其亦與此暗合)이니라. * 운삼사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 셋이란 끝남의 근본이요, 넷은 셋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이것이 근본의 변화된 자리라 그러므로 셋과 넷으로 운행한다 이르고, 여섯이란 삼극의 크게 합침이요, 일곱이란 여섯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이 또한 근본의 변화함이라 그러므로 다섯은 여섯의 먼저가 되고, 일곱은 여섯의 뒤가 되므로 가락지를 이룬다 함이니 이미 여섯의 합침을 말하였고, 또 가락지를 이룸도 말했으니 그 여섯을 말하지 않음은 뜻이 그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 운삼사성환오칠(運三四成環五七) 삼자(三者)는 극지본야(極之本也)요 사자(四者)는 자삼이생야(自三而生也)이니 시원화지위야(是原化之位也)라 고왈운삼사(故曰運三四)하고 육자(六者)는 삼극지대합야(三極之大合也)이오 칠자(七者)는 자륙이생야(自六而生也)이니 시역원화(是亦原化)라 이호위륙선(而五爲六先)하고 칠위륙후(七爲六後)하며 고왈성환(故曰成環)하여 기언합륙(旣言合六)하고 이우언성환(而又言成環)하니 칙불언륙(則不言六)은 이재기중의(而在其中矣)니라. *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그 물건됨이 둘이 아니면 그 물건의 남을 측량할 수 없다 하였으니" 둘이 아니라 함은 하나를 말함이라. 이 하나의 묘한 옮김이 미루어 불어서 다함이 없는지라. 흩어지면 만 번 가고, 걷으면 만 번 오나니 간다 함은 한 근본으로 만 가지가 다름이요, 이룬다 함은 만가지 다름으로 한 근본이라. 그 묘한 작용의 변화를 가히 측량하여 잴 수 없나니 그 근본이 되어 일찍이 동작하는 바 있지 않으니라. * 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 중용(中庸曰)하기를 기위물불이(其爲物不貳)하면 칙기생물불측(則其生物不測)하니 불이자일야(不貳者一也)니라 일지묘운(一之妙運)이 추연무궁(推衍 * 본심본(本心本) 마음의 근본은 곧 도의 하나이라. 그러므로 사람으로 말하면 도의 근본은 또한 나의 마음의 것이라. 기록에 이르기를 "사람이란 천지의 마음이라" 하였으니 또한 이 뜻이니라. * 본심본(本心本) 심지본(心之本)은 즉도지일야(卽道之一也)이라 고자인이언(故自人而言)하면 칙도지본(則道之本)은 역오심지야(亦吾心之也)라 기왈인자(記曰人者)는 천지지심야(天地之心也)하니 역차의야(亦此意也)이니라. * 태양앙명(太陽昻明) 마음의 광명이란 한울의 태양과 같아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는지라. 맹자(孟子)가 이르기를 "해와 달이 밝음이 있으니 빛을 써서 반드시 비친다" 하니 도의 근본이 있음을 말함이니라. * 太陽昻明 심지광명(心之光明)이란 여천지태양(如天之太陽)이니 무소불조( *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한울과 땅과 사람은 하나이라. 사람은 한울과 땅의 하나에 맞추어 삼재(三才)가 되나니 사람이 능히 그 본심의 하나를 잃지 않으면, 천지만물의 근본이 나와 일체(一體)가 되므로 이른바 천하의 큰 근본을 세우는 이는 이에서 얻음이니라. *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천지인일야(天地人一也)라 인중어천지지일(人中於天地之一)하여 이위삼재야(而爲三才也)하니 인능불실기본심지일(人能不失其本心之一)하면 칙천지만물(則天地萬物)하여 본오일체(本吾一體)하므로 소위립천하지대본자(所謂立天下之大本者)는 득지어차의(得之於此矣)니라. * 일종무종일(一終 도란 하나일 따름이라. 그러므로 하나로 마치되 하나에서 마침이 없느니라.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나의 도는 하나로써 뚫는다" 하였고, 석씨(釋氏=釋迦牟尼)는 이르기를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하였고, 노자(老子)는 "그 하나를 얻으면 만사가 끝난다" 하였으니 그 정밀하고 미묘함을 다시 어찌 이에서 더하랴! 노주 김영의(蘆洲 金永毅) 근주(謹註) * 일종무종일(一終 도자(道者)이란 일이이의(一而已矣)이라 고일위종이무종어일자야(故一爲終而 노주 김영의 근주(蘆洲 金永毅 謹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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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민안부(閔安富) 농은(農隱)유집 천부경(은허 갑골문과 같은 글자 다수)
신지 녹도전자 천부경 -중국 산동성 백수현의 창성조적서 비문과 북한의 법수교 비문(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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