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행 이야기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결점

자공 우주 2007. 6. 22. 09:46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서 생기는 결점
수행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생만을 생각하게 되어, 입는 것이나 먹는 것 따위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죽음과 내생을 생각하게 되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려고 생각한 사람이 이것저것 준비하게 되는 것과 같다. 사는 동안 오로지 입는 것, 먹는 것, 명예 따위에만 집착하는 것은 무상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에 무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은 만큼 이생에서의 일만을 생각하게 된다. 죽게 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다 한다. 하지만 누구나 오늘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내일 죽을 사람도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생각이 수행조차도 다음으로 미루게 하며 나태한 마음을 생기게 한다. 찰나의 순간이라도 게을리 하면 결국 깨달음의 세계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수행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하다.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들 대부분은 영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또는 명예를 위해 수행을 한다. 어떤 사람이 아티샤에게 이생만을 위하여 수행하게 되면 어떤 열매를 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티샤는, 이생만을 위하여 수행을 하게 되면 열매도 이생에 얻을 수 있는 열매만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이생만을 위하여 수행을 하게 되면 이생에 얻을 수 없는 작은 열매는 얻을 수 있겠지만 다음 생에는 삼악도에 나게 된다. 그러므로 완전한 수행을 하고 싶으면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가난해지라는 말이 아니고 사바세계의 여덟 가지 법(자신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고, 칭찬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고, 도와주지 않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을 좋아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불행하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 것)에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다. 이것에 집착하게 되면 완전한 수행을 하기가 힘들게 된다.

우리는 항상 이생에 집착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하는데, 하나의 바늘 앞쪽에 뾰족한 부분이 두 개가 있으면 바느질을 할 수 없듯이 수행과 사바세계의 여덟 가지 법은 모순의 관계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으며, 이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사바세계의 여덟 가지 법에 집착하게 되어 수행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에 전념하려면 사바세계의 여덟 가지 법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오로지 청빈한 생활만이 수행자가 사는 모습이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왕국을 버리고 출가하시어 버려진 옷을 주워 입으시고 수행에만 전념하셨다. 고행을 하면서도 죽을 것을 걱정하지 않았으며, 설혹 죽게 될지라도 괘념치 않고 수행을 계속하셨던 것이다. 죽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수행에 전념한 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죽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으며, 은혜로운 부처님께서 육만 번의 전륜성왕이 될 수 있는 복덕으로 우리에게 기원을 하였으므로 사바세계에 밀알 하나와 진주를 바꾸게 되는 그런 굶주림의 시대가 되어도 수행에 전념하는 이는 굶어 죽지 않는다. 사바세계의 여덟 가지 법을 버리게 되면 명예와 부유함, 기쁨 같은 것은 자동적으로 생기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일에 집착하듯이 이생의 이익을 위한 기도나 염불은 누구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집착을 버리고 완전한 가르침을 배우려면 죽음과 무상에 대하여 명상해야만 한다. 이생의 집착을 버리지 못하면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이생의 집착을 위한 수행이 되고 만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명예에 집착하는데, 이 중에서도 명예를 버리기가 가장 힘들다. 삼보에 공양을 올리면서도 자신의 행위를 남이 좀 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는데, 명예에 대한 집착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행을 하는 사람에게도 명예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가 가장 힘들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단계적으로 배우지 않고 매우 높은 길만을 찾으면서, 기본적인 길인 집착을 버리는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은 코앞에 있는 불구덩이는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나무의 열매만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바른 수행의 길을 갈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게 되면 쓸데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항상 수행에만 매진하게 되며 수행에 따르는 육체적 고통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수행을 해도 흉내만 내면서 이생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죽음이라는 적이 갑자기 나타나게 되면 자신이 그 동안 애지중지 하며 집착한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모든 것을 잃은 다음이다. 그러므로 항상 죽음을 생각하면 담담한 마음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지만, 죽음을 잊고 살면 죽음의 순간에 맞닥뜨려서야 고통에 가슴을 쥐어뜯게 된다.
많은 재산과 왕의 권력도 죽음에 이르게 되면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으며, 그 때서야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바른 수행을 할 것이라고 후회해도 이미 늦은 때이다.

㉯ 죽음을 생각하면 생기는 이득
죽음을 생각하면 사소한 일에서도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과 무상을 아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식이라고 말씀하셨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이생에서 바르게 수행하게 되고,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나기 위해 계율을 지키고, 보시하고, 인욕할 뿐만 아니라 하사(下士), 중사(中士), 상사(上士)의 길을 차례로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밀라레빠가 처음 수행하게 된 동기도 융뚱이라는 공양주의 죽음을 보고 나서였다.
티베트의 수행자들은 종아리뼈, 해골 등을 지니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죽음을 항상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율장을 따르면 화장실 안에 해골의 그림을 그려 놓아야 되는데, 그것은 항상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생의 일에 집착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수행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탐·진·치의 삼독을 없애는 데에도 아주 큰 힘이 되며 덕행을 쌓는 데도 큰 힘이 된다.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어 생기는 힘은 망상과 허물을 부수는 망치와 같아서, 수행력을 증대시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힘이 되어 준다.
수행이 깊은 사람은 죽음이 찾아왔을 때, 마치 나그네가 고향에 들른 것처럼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그러한 경지에 들면 ?지금 당장 죽게 되더라도 두렵지 않다. 지금 당장은 늙은 비구이지만 오후에는 정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밀라레빠는 이렇게 말했다. ?나 죽음이 겁나 산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그 곳에서 영원한 마음의 근원이 공함을 알게 됐다. 이제는 죽어도 겁나지 않는다."

㉰ 죽음을 바르게 생각하는 방법 - 죽음에 대한 아홉 가지 명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갓 태어난 아이도 백 년만 지나면 죽고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죽음의 화살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겨냥하고 있으며 때가 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삶이란 과녁을 꿰뚫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이 있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가 없으며, 아무리 힘센 사람일지라도 죽음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신통으로 빨리 도망칠 수 있어도 죽음의 빠름을 당해내지 못하며, 세상을 지배한 왕들의 위대한 힘으로도 죽음을 이기지는 못한다.

수명은 연장할 수가 없다
모든 중생은 전생의 인과에 의해서 태어나고 죽게 되므로 이생에서는 수명을 늘릴 수가 없다. 순간순간 죽음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마치 벌을 받으러 가는 죄인처럼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이 많은지 남은 시간이 더 많은 지도 알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 죽음을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다고 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없다. 잠을 잘 때 우리는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잠을 자지만 그 순간에도 수명은 염라대왕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사는 동안 수행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수명은 매우 짧다. 그 중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다. 육십 살까지 산다고 했을 때 잠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 놀러 다니는 시간 등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들을 빼고 나면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릴 때에는 수행과 공부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뒤늦게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마음만 있을 뿐 행동하지 못하고 마흔 살이 되며, 마흔 살이 된 후에는 늙었다고 생각하여 다음 생에 수행자로 태어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만 하면서 육십 살이 되어 죽음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수행해야지' 하는 마음만 먹고는 실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데, 우리는 이를 보면서 자신의 현재를 살필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하여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깨달음을 향해 정진해야 할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밥을 먹다가도 죽는 경우가 있다. 이렇듯 죽음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늙도록 살 수 있을지 확실히 모르면서 늙은 후에 편안하게 살 궁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죽게 되는 원인은 많고 살 수 있는 기회는 적다
한 통 안에 네 마리의 뱀을 넣으면 힘센 놈이 나머지를 먹어 버리듯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地 ·水·火 ·風)들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우리의 목숨은 죽음으로 향한다. 몸 밖에 있는 원인이든 몸속에 있는 원인이든 목숨을 앗아갈 원인들은 너무도 많다. 심지어 자신을 살리기 위한 원인들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나 집이 오히려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도 있으며, 육신을 지탱하게 해 주는 음식물이 원인이 되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렇듯 우리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것이다.

몸은 매우 약한 것이다
죽음의 원인이 많이 있더라도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다면 막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몸은 매우 약하다. 조그만 가시에도 죽을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이러함을 알면 내일부터 수행해야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것이다. 중요한 것은 특별한 수행의 장소나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가오는 순간순간을 수행자의 자세로 살면 범사가 수행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수행하지 않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재산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 왕과 신하, 주인과 하인, 스승과 제자에 차별이 없다. 어떤 사람이 큰 돌을 다듬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돌을 다듬던 사람이 말하기를 버리는 일 말고는 쓸 데가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지금의 생에 만들고 있는 모든 것들은 죽음에 이르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다.

친지들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혈육이나 절친한 친구조차도 죽음의 길에는 동행할 수 없다. 오로지 그 길은 혼자서 가야 할 길이다. 인생에서 이룬 그 어떤 것도 지닐 수 없이 홀로 가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혈육에 의지하며 시간을 낭비한다. 실로 의지할 것은 수행밖에 없다.

자신의 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죽을 때 세상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하고 세상 모든 이들이 친구가 되어도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하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이 보석같이 귀한 몸 역시 두고 가야만 한다. 먼 길을 갈 때 좋은 안내자와 식량이 필요하듯이 죽음의 길에서는 수행만이 동반자요 양식이다. 수행하지 않으면 이생에서 아무리 찬란한 업적을 쌓아도 죽을 때는 미물과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나그네가 남의 집에 머물러도 자신의 집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만 하듯이 이생에 집착하지 말고 내생을 위하여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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